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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이야기

유방암 아웃팅 당하다.

by 현소 2023.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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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유방암을 알리기까지

유방암은 발병률도 높고 생존율도 높은 질병이다.

하지만 암은 암이어서 무서운 것은 당연하고 위축되어서

내가 암에 걸렸다는 것을 누구에게까지 알려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아쉽게도 암 확정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회사에 있었고

하필 내가 자제력을 잃고 울고 있을 때

다른 팀 이사와 실장이 날 발견하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는 불상사가 생겼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내가 암을 인정하고 마음을 정리하기도 전에

회사는 '저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암 아웃팅 당하다.

회사에 알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3차 병원에 가면 재검사도 해야하고 치료 일정이 어떻게 나올지 몰랐기 때문에

상사에게만 내 상황을 알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3차 병원을 다녀온 후 상황에 따라

알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물론 그 계획은 얼마가지 않아 무산되었지만..

 

현소 님이 말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내가 회사 사람들에게 말해놨아요,
걱정 말고 병원에 집중하세요~

 

어느 날 일을 하고 있는데 상사가 전화해서 다짜고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내 허락도 없이, 이렇게 갑자기? 모두에게 말했다고?

너무 당황스럽고 화가 났지만 상사는 상사 입장에서 나를 배려한다고 한 행동이라 그걸 질책할 수는 없었다.

상사의 전화를 받고 나는 오전부터 왜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는지 알았다.

그냥 내 기후인 줄 알았는데 그들은 이미 내 상황을 알고 있던 것이었다.

상사와 통화를 끝내고 자리에 돌아오자 후임은 이야기 들었다며 어떡하냐고 울상이었다.

앞에서는 겨우 웃으며 괜찮아요~ 말했지만 화남, 당황스러움, 슬픔 등 다양한 감정으로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직 아무것도 결정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내 의지와 다르게 회사 사람들에게 유방암 환자라고 알리게 되었다.

 

 

 

남에게 알리기 전에 꼭 물어봐주세요.

나는 퍼스널 스페이스, 즉 개인공간 영역이 매우 넓은 사람이다.

이 말은 곧 나에게 큰일이 생겼을 때도 많은 사람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해결하는 편인데,

(사실 지인이 많은 편도 아니다...^^;;)

이번에 유방암 확진을 받고 내가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가족, 친한 지인 한 병, 회사 상사 및 임원진이 전부였다.

좋은 소식도 아니고 병기 확정과 치료 방향이 확정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아직 3차 병원도 결정이 안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러웠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회사 동료에게까지 알려서 걱정을 사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상사의 과한, 잘못된 방향의 배려로 직속 후배 직원과 동료가

나만 보면 울망울망하며 걱정하는 모습을 매일 봐야겠다.

그냥 한 번 정도 괜찮냐고 물어보고 아무렇지 않게 지내주면 좋았을 텐데,

출근을 할 때마다, 얼굴을 볼 때마다 걱정하고 울망울망하고 있으니..

내 마음도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의 마음을 안심시키는 일을 내가 해야 했다.

얼마나 배려 없는 상황인지...

나도 힘든 상황에서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의 마음을 안심시키는 건 쉽지 않더라..

수술을 위해 퇴사하는 날까지 회사에서의 생활은 너무 힘들었다.

 

그런가 하면 정말 감사한 사람들도 있었다.

내 가족들은 병원을 알아본다거나 하는 등 필요에 의해 다른 사람들에게 내 병을 알려야 할 때도

(내 성향을 알아서이겠지만) 나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고,

내 소식을 전해 들은 지인들은 가족을 통해 응원을 하거나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까지 계속 모른 척해주었다.

 

가족을 통해 응원을 보내준 사람들은 물론이고

알고 있음에도 내가 먼저 티 내기 전까지 모른 척 해준 이 행동이 나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유방암, 누구에게 어디까지 알려야 할까?

나는 앞서 말한 대로 정말 소수의 인원에게 내 병을 알렸고

나머지 지인들에게는 수술 및 퇴원 후 첫 진료에서 병기 확정과 차후 치료 방향에 대해 알고 난 후에 알렸다.

사실 이것도 SNS를 통해서 알렸기에 지인임에도 불구하고 내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도 물론 당연히 있다.

 

SNS에 글을 올렸을 때는 정말 많은 연락을 받았다.

왜 미리 말 안 했느냐 서운해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거 별거 아니잖아. 수술했으면 됐지 뭐- 하며 대수롭지 않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왜 연락을 했는지 모르겠다..

위로를 해주겠다고 하는 말이긴 할 테지만, 이미 오랜 기간 동안 마음의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온 사람에게

이게 할 말인가, 위로란 말인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냥 소식을 늦게 알았다, 괜찮으냐 고생 많았다-라고 말해주는 게 제일 힘이 되었다.

 

어쨌든 저쩄든 이렇게 사람들의 반응이 제각각인데, 큰 병에 걸렸을 때 어디까지 알려야 좋은 것일까?

 


사실 이건 개개인의 선택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아픈 만큼, 병의 경중이 큰 만큼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생각도 든다.

문제는 환자가 지인에게 자신의 병을 안 알렸다가 그 지인이 서운해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만약 환자가 되었다면 조금 이기적으로 '나'를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기를 추천한다.

 

암은 생각보다 무거운 짐을 안겨주고 '내' 마음을 다독이고 굳건히 하는 데에 많은 힘이 들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까지 알리고 누구에게 말 안 하면 그 사람이 서운해하면 어쩌지?' 혹은

'괜히 말했다가 불편을 주면 어쩌지?' 하는 고민은 오히려 나를 좀먹는다.

 

어느 병이나 그렇겠지만 특히 암은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는 이야기를 제일 먼저 듣는다.

이 고민 또한 스트레스를 유발할 뿐 옳은 길, 정담이 없는 고민이다.

모든 지인에게 알려도 좋고 가족에게만 알려도 좋다.

어느 방향이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쪽으로 환자인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선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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