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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이야기

복귀는 무리였나? 문득 드는 후회

by 현소 2023.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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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5월에 작성한 글로 시기가 안 맞을 수 있습니다.
혹시 유방암 환자분들께서 회사 복귀를 고민하고 있다면,
이 시리즈 글을 참고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


3월부터 회사에 복귀해서 일을 하고 있다.
이전에도 글을 올렸었는데 많은 분들이
복귀 후 컨디션은 어떤지 물어보시고
일을 하지 않을 때의 불안함을
엄청 공감해 주셔서 댓글을 몇 번이고 읽었었다.

지금은 복귀 3개월- 곧 있으면 4개월 차가 되는데
솔직히 일을 하면서 한 번씩 후회를 한다.
4월에 새롭게 계약을 하면서 지금은 4일 업무를 하고 있고
2일은 사무실 출근, 2일은 재택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래도 체력이 뚝뚝 떨어지는 게 느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 생명을 깎아서 일을 한다는 게 이런 기분이라는 걸
인생 살면서 처음 느꼈다.

업무 자체는 이미 몇 년간 해온 것이기 때문에
어려울 게 없지만 위치가 중간 관리자이다 보니
스트레스를 안 받고 싶어도 조금씩 받게 되더라-
그리고 한 시간씩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면서
사람들에게 치이고 겨우겨우 출퇴근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더라.

그래도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
내 주변이 환기되는 분위기라
이틀 출근하고 하루는 꼬박 앓아누우면서도
견뎌냈는데, 얼마 전 정말 큰 상처를 받았다.



검사받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일은 내가 정기 검진을 받고 온 날 터졌다.
수술 후 1년이 지나서 하는 정기 검진이었고
수술 준비할 때와 동일하게 모든 검사를
진행했기 때문에 나는 검사 한 달 반 전부터
계속 큰 검사를 한다고 상사에게 알렸다.

그리고 검사 날, 역시나 나는 진이 다 빠져서
집에 돌아왔고 결국 몸살에 걸렸다.

검사 다음 날이 사무실 출근 날이었는데
도무지 출근을 할 수 없었다.
처음엔 오전만 쉬면 나아지겠지 싶어서
오전 반차를 썼다가, 오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아서
하루를 쉬겠다고 상사에게 전화를 했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미안하지만
내가 너무 아파서 오늘 출근이 힘들 것 같다
말했더니 바로 돌아온 대답이

“검사받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였다.

안 그래도 아파서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데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이 안 나왔다.
그 후로 상사가 내뱉는 말은 더 가관이었다.

왜 이렇게 큰 검사라고 나한테 말을 안 했느냐
(나는 앞서 말한 대로 한 달 반 전부터 말했다.)
그럼 어쩔 수 없으니 오늘 쉬고 내일 출근해라.
(내일은 원래 근무를 하지 않는 날이다.)
그리고 이번 주 재택 요일은 사무실 출근으로 바꿔라.
(…)

내 어떤 말도 상사에게 먹히지 않아서
어찌어찌 대화를 정리해서 근무하지 않는 날은 재택을
나머지 요일은 출근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냈다.

웃겼다.
4일 근무로 계약하면서 연차는 원래대로 사용해도 된다고
말한 사람이 상사였다.
재택근무 역시 예전처럼 할 수 있게 적용해 준다고
말한 사람도 상사였다.
따지고 보면 검사 날 연차 낸 거고 그 다음날
아파서 어쩔 수 없이 당일로 연차를 낸 건데
왜 내가 출근 안 하는 날까지 근무를 해야 하는 건가-
4일 근무라는 이유로 고작 200도 안 되는 돈을 받으면서
내가 이렇게 일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이 나서 끙끙 앓으면서도 생각은 계속 이어져서
아픈 내가 죄라는 생각까지 도달했다.
이 사람들 원래 이런 사람들이었는데-
동료들이 상사가 많이 변했다고 말해 준 걸
너무 쉽게 믿었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죽하면 내 지인들을 이 회사 때문에
내가 스트레스받아서 암에 걸린 걸 거라고
말까지 했었는데, 알면서도 돌아온 내가 싫었다.

억울하고 슬프고 눈물이 났다.






검사를 받고 이틀 뒤, 약속대로 출근을 했다.
도저히 지하철을 1시간 내내 타고 있을 자신이 없어서
택시를 탔다.
아직도 열이 났지만 이 회사의 지독함을 알고 있기에
이를 악물고 출근했다.

웬일인지 상사도 오전부터 출근해서
사무실을 헤집어놓고 있었다.
남은 감기는 눈, 떨어지는 머리를 겨우 가누면서
일을 하고 있는데 옆에 와서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면서 업무 이야기를 했다.

점심시간이 오고 상사가 다 같이 나가서 밥 먹자는 걸
나는 됐다고 했다. 그 얼굴을 보면서 밥 먹기도 힘들거니와
속도 뒤집어져서 죽을 먹어야 했고
점심시간에 자지 않으면 오후 업무시간을
버틸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싸 온 죽을 먹고 30분 정도 잠을 잤다.
열은 좀 떨어진 것 같았고 눈은 아직도 아팠다.
텅 빈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점심을 먹고 온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와글와글 시끄러운 가운데,
상사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괜찮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아니요, 안 괜찮아요.

평소면 괜찮다고 답하겠지만
정말 안 괜찮아서 안 괜찮다고 했다.
어떡하냐고 업무가 어느 정도 정리되면
일찍 퇴근해도 된다고, 상사는 뒤늦게
솔루션을 제시했지만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공감 능력이라고는 1도 없는 사람이라서
괜찮냐는 질문을 한 게 이상했다.
바로 직장 동료를 붙잡고 점심시간에
나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했냐고 물어보니
밥을 먹으면서 내 컨디션 이야기가 나와서
아침에 내가 열도 나고 힘들었다는 걸 말해줬단다.

그럼 그렇지- 그럴 줄 알았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일에 집중했다.
나는 이날 결국 정시 퇴근을 했다.

회사는 아직도 다니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같이 일하던 동료가
이번달에 관둬서 완전 코가 꿰인 상황이다.

검진 날 사건 이후로
상사와 이야기를 많이 나눠서
어느 정도 해결책이 보인 것 같지만
이것도 순간적인 처방일 뿐이다.
나까지 관두면 업무가 마비되니
상사는 최대한 나를 도와주는 것처럼 말하면서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나 역시 더 이상 못 다니겠다고 관둬야 할 것 같다고
말을 한번 던져놨기 때문인지 요즘 상사는
나를 좀 조심하게 대하려는 눈치였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지는
더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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