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병원 예약과 준비물
내가 유방암이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엄마는 주변에 병원을 수소문했다.
물론 내가 의사에게 추천받은 병원과 주변 사람들이 알려준 병원이랑 별 차이는 없었다.
단, 주변에서 유방암으로 치료를 받았던 사람들의 의견은
최대한 큰 병원으로 가는 것이 좋고 어느 병원이든 수술 일정이 제일 빨리 잡히는 병원으로 가는 게 좋다였다.
마침 엄마 주변에 유방암 수술을 하셨던 분이 계셔서 객관적인 부분, 주관적인 부분 모두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사이 유외과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면역 염색 결과가 나왔고 역시나 침윤암이었다.
몇 기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했다. 기수는 이 암세포를 아예 들어내서 검사를 해야 알 수 있다 했다.
굳이 오래걸릴 Big 4 병원에 가고 싶진 않았기에 나와 엄마는 미리 추려놓은 병원에 연락을 했다.
서울 3차 병원 진료를 예약하려면 무조건 암 판정을 받아야 했다.
진료 예약을 위해 병원에 전화했을 때, 간호사분들이 제일 먼저 물어본 질문이 암 판정을 받았냐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복잡한 마음에 그럼 암이니까 전화했지 그냥 했겠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어쨌든 암 판정을 받았고
어느 병원에서 조직 검사를 통해 암 판정을 받았는지도 설명을 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암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서울성모병원(가톨릭대학병원)과
건대병원, 서울삼성병원을 예약했고 내 검사 결과를 받기 위해 처음 유방암 판정을 받았던 유외과에 다시 방문했다.
챙겨야 할 자료는 매우 많았다.
진료의뢰서 / 검사 결과지(초음파 검사 결과지 필수 지참) / 염색된 조직 검사 슬라이드 1장 / 블록 1개 혹은 비염색 조직
슬라이드 10장(필수 지참) / PET 결과지 / 영상 CD
(위 준비물은 삼성병원 기준 준비 자료 리스트 일부이다)
병원마다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대부분 원하는 것은 진료 의뢰서와 검사 결과지, 조직 슬라이드, 영상 CD 등이었다.
자료를 받으며 걱정한 것은 조직 검사 슬라이드의 개수였다.
병원마다 확인 검사를 위해 가져오라고 하는데 개수는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러면 병원 3군데에서 진료를 받지 못하는데.."
나의 말에 간호사는 먼저 진료를 받은 곳에다가 다른 병원에도 진료를 받아야 하니 돌려달라고 말을 하면 된다고 확신을 주었다.
어영부영 정해진 3차 병원
제일 빠른 시일에 예약된 병원은 놀랍게도 서울성모병원이었다.
서울성모병원에 유방암 센터장이 매우 유명한 교수인데 운 좋게도 그 교수님께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사실 3~4주는 대기해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암 진단을 받자마자 그다음 주 수요일에 예약이 가능해서 기쁘면서도 당황스러웠다.
예약을 도와주는 간호사 역시 교수님이 이렇게 한가한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이상하다며 함께 당황했으니 이게 얼마나 별일인지 알 수 있었다.
진료 예약 당일, 대학병원이 처음이었던 나는 예약 시간보다 일찍 가도 기약 없는 대기시간에 지쳤고
겨우 의사와 대며을 했을 때는 심드렁한 반응에 상처를 받았다.
"암이네요- 가슴 좀 볼까요."
내가 가지고 온 자료를 훑어본 의사는 촉진으로 암 위치를 확인하고는 마치 외운 듯 전달사항을 말했다.
"오른쪽에 있는 게 맞고 위치가 두 군데인데 너무 떨어져 있어서 부분 절제는 힘들 것 같아요.
필요한 검사들 바로 진행하고 수술을 제일 빠른 게 4월 26일이니까 그때로 하고,
가족 중에 이력이 있나요? (내 큰 고모는 젊을 적 난소암으로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럼 유전일 수도 있으니 유전자 검사도 하면 좋을 것 같고. 4월 초에 검사 결과 봅시다."
피자 위에 치즈가 녹은 것처럼 의자에 늘어져 앉은 의사와 만난 시간은 5분도 채 되지 않았다.
밖에서 기다리라는 간호사의 말을 듣고 다시 복도로 나와 멍하니 앉아있으니
간호사가 다가와서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었다.
"저기.. 근데 저희가 다른 병원 진료도 예약을 해 놔서, 혹시 조직 검사 샘플을 언제쯤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보호자로 온 엄마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간호사 얼굴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샘플은 수술 후에 받을 수 있으세요. 아니면 지금 가져가셔서 다른 병원 진료받으셔야 하는데,
그럼 4월 26일 날 수술 못 받으세요."
그래도 괜찮냐는 간호사의 말은 마치 협박처럼 들렸다. 난감해진 엄마는 우선 알겠다고 하며 간호사를 돌려보냈고
나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질문을 했다. 수술 날짜가 빨리 잡힌 건 좋은데 그래도 다른 의사들 말도 들어봐야 하지 않겠냐고, 다른 의사들은 수술을 제안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이때 나는 이미 모든 기운을 다 썼고 더 이상 생각도 고민도 하고 싶지 않았다. 많은 걸 바란 건 아니었다.
의사들이야 심드렁한 존재라는 걸 모르지도 않았다. 단지 내가 환자이기 때문에 나를 주체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한
진료와 검사 예약, 수술 일정 조율이- 환자 주체가 아니라 의사를 주체로 돌아간다는 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무조건 이때 검사받고 이때 수술받아, 너의 일정은 네가 알아서 조정해.
공장처럼 정해지는 일정들은 나에게 이런 압박으로 다가왔다.
3차 병원에서 의지는 환자에게 없고 의사에게 있었다.
원래 계획과는 틀어진 일정으로(사실은 굉장히 운이 좋은 일정이지만)
신뢰와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어영부영 3차 병원이 결정되었다.
이 찝찝함은 오래갔다.
내 담당의에게 수술을 받는 엄마 지인이 있어 그 교수님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최근 서울성모병원이 병원 기기들을 전부 다 바꿔서 새것이라 훨씬 좋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듣고 나서야
그래 이미 이렇게 된 거 어떡하겠냐, 잘 버텨보자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물론, 모든 검사를 끝내고 두 번째 진료시간에 조직 검사 샘플을 돌려받자마자 찝찝함은 다시 시작됐다.
정확히는 불쾌했다.
간호사가 매서운 눈초리로 협박하듯 조직 샘플은 수술 끝나야 받을 수 있다고 말하던 것이 생각났다.
난 아직 수술도 안 했고 이번이 두 번째 진료인데 이걸 돌려준다고?
그럼 더 일찍 받아서 다른 병원 진료도 볼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자기들이 귀찮아지니까 이런 식으로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굳이 병원을 믿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라보고 싶었는데 불쾌함과 찝찝함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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